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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화 도와줘 “바로 저곳에 숙부가 있소.” 이석군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물가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안내해줘서 고맙소. 아 참, 조금 전 한 말은 크게 담아 둘 필요 없소.” 엽현이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이석군이 고개를 저었다.
“내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오. 조금 전 그 말을 듣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해야 마땅하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면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때 이석군은 그를 따르지 않고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엽현의 말이 옳았다. 지금껏 다른 이들이 자신을 존중해 준 것은 절대적으로 숙부인 이모백 때문이었다. 육대강자 중 일인인 숙부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실력과는 상관없이 극진한 대우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 모든 것이 당연히 여겨왔다. 심지어 다소 거만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엽현의 말을 듣고 난 후, 그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스스로가 남에게 으스댈 자격이 있는 걸까?
설령 그런 자격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숙부의 이름 석 자로 인한 것이 아닌가!
이 순간, 그는 근래 들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숙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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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을 귀여워해 주기만 하던 숙부가 시간이 지날수록 냉담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그런 태도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침묵에 잠겨 있던 이석군이 앞서가는 엽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엽 형, 고맙소!” “별일 아니오!” 손을 휘휘 저으며 발걸음을 내딛는 엽현.
이 모습에 오픈홀덤 이석군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떠났다.
한편 오두막 앞에 도착한 엽현.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우 소박한 소복 차림의 남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서 영락없는 서생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자가 바로 오유계 육대강자 중 한 명인 이모백!
이모백이 등장하자 엽현이 포권을 취하며 예부터 차렸다.
“엽현이 성주를 뵙습니다.” “하하,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구나. 원래 내가 직접 찾아갔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조카 녀석을 시켜 이리로 부르게 되었다.”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를 보자고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칠색 부적 한 장을 써줄 수 있겠느냐?” “어떤 종류의 부적을 말하는 것입니까?” “호혼부(護魂符)!” 호혼부?
엽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세이프게임
“그게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영혼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부적이지.” “흠… 성주가 직접 부탁하신다니 한 번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고맙구나! 물론 공짜로 그려달라는 건 아니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 해 보거라.”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한 일을 기억해 주셨다가, 나중에 제게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때, 한 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듣던 대로 시원스런 아이로구나! 좋다, 부적만 써 준다면 그리한다고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성주.” 이때 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부적을 만들어야 할 것인데, 이곳은 안전한 곳인지요?” “물론이다. 이곳에 감히 너를 방해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약 뭐든 필요한 게 있거든 모두 내게 말 하도록 하거라.”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이곳으로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마!”
엽현은 곧 책상 위에 빈 부적을 꺼내놓고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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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원하는 것이 세이프파워볼 다른 부적이었더라면 다소 부침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과 영혼에 관한 부적은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엽현은 매우 조심스레 부적을 그려나갔다. 비록 한 번 성공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조금만 실수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에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약 세 시진이 지났을 무렵.
적선성 상공에 돌연 일곱 가지 색의 빛이 솟구쳤다.

엽현은 때를 맞춰 나타난 파워볼사이트 이모백을 향해 영롱하게 빛나는 칠색 부적을 건넸다.
손 안의 부적을 살펴본 이모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구나. 수고가 많았다.” “후후, 별말씀을. 그럼 약속대로 부적을 드렸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
이모백이 막 돌아서려는 엽현을 불러 세웠다.
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모백이 웃으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순 없는 법이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엽현의 앞으로 어린아이 주먹만 한 자색 인장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에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허령인(虛靈印)이라는 것이다. 인장에 현기를 불어 넣으면 허령의 힘이 흘러나와 일정 시간 동안 너의 경지를 한 단계 상승시켜 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가슴이 벅차올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경지를 한 단계 올려 주다니, 이런 보물이 또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만약 서계를 이용해 적의 경지를 낮추고, 이 허령인으로 자신은 경지를 높인다면 시작부터 자신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으리라!
이때 이모백이 말을 이어갔다.
“허나 이는 결국 외물의 힘에 기댄 것에 불과하니,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경지와는 비교가 불가하다. 게다가 한 번 사용하는데 대단히 소모가 크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허령인이 귀하다지만, 네가 준 칠색 부적만큼은 아니다. 그러니 약속했던 대로 한 번의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성을 떠날 수 없는 상태이니 이 점을 고려해 주면 고맙겠구나.” “음…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참!” 이모백이 뭔가 떠오른 듯 웃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너와 수라여제의 관계가 특별하다던데, 그게 사실이더냐?” “하하, 제가 그 아이의 오라비입니다.” “오? 그것참 의외로구나!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의 누이와 관련된 것이다.” “령이와 관련된 것? 그게 무엇입니까?” “흠… 사실 얼마 전부터 망자대제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봉인이 느슨해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 봉인은 망자대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말에 엽현의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말은 누군가 그를 도와 봉인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모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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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컨대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일개 약소 종문은 아닐 테지. 또한, 망자대제가 일단 다시 세상에 출몰하게 되면 반드시 수라여제와 맞붙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수라여제가 죽을 일은 없겠지만, 만약 망자대제의 배후에 있는 세력이 개입한다면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엽현은 잠시 침묵했다.
사실 이 문제는 그 역시 고민해 오던 것이었다. 엽령의 실력에 의문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누군가가 개입한다면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네게 만유서옥의 열쇠가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다들 숨죽이고 있지만,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니 단단히 주의해야 한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그럼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 보거라.”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공손히 포권을 취해 예를 갖춘 엽현은 곧장 하늘로 솟구쳤다.
오두막 앞.
이모백은 멀리 사라지는 검광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평화로운 시절은 다 지났구나…….” * * *
한편, 적선성을 떠난 엽현은 부문종이 아닌 만유서원을 찾았다.
엽현이 막 만유서원에 도착한 순간,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튀어나와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때 무리의 가운데가 갈라지더니 임소서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 놈이 또 무얼 하러 온 게냐!” “장문수를 만나러 왔다.” “네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바로 이때, 서원 안쪽에서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들여보내!” 이에 움찔한 임소서가 손짓을 하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순식간에 길을 터 주었다.
임소서가 엽현을 노려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엽현은 개 닭 쳐다보듯 시선도 주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갔다.
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소서의 안색은 붉다 못해 검게 변해 있었다.
서원 안으로 진입한 엽현.

어느 고풍스런 장원 안으로 들어선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바로 한가로이 마당을 쓸고 있는 장문수였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이 파괴신 같은 여자가 청소를?
이때 장문수가 빗자루를 한쪽에 던져 놓더니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마당 안에 있던 온갖 먼지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럴 거면 왜 처음부터 빗질을 한 걸까.
엽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장문수가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신부사가 되었다고?
“그렇게 됐다.” “흥, 아예 똥 멍청이는 아닌가 보구나.” “…….”
엽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장문수는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게냐?” “수라지옥에 대해 상의할 일이 있다.” “수라지옥?” 순간 눈살을 찌푸린 장문수가 이번에는 축객령을 내리듯 손을 휘휘 저었다.
“일 없다.” “…무슨 뜻이지?” “흥! 날 더러 수라여제를 도와 망자대제를 치라고 할 셈이 아니더냐?” “그래, 바로 그거야!” “하하하! 내 분명 너를 위해 두 번 나서 준다고는 했지만, 목숨을 건다고는 하지 않았다.” “어째서? 망자대제가 그렇게나 두려운 건가?” 엽현의 물음에 장문수가 무심한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내게 그런 저급한 자극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와 불구지천의 원수를 진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런 싸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이냐? 게다가 수라국과 망자대제의 원한은 명백히 수라국 쪽에서 잘못한 일이 아니더냐?” “장문수, 하지만 그와 악령들이 봉인을 풀고 나오게 되면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무슨 상관이라니? 그들이 만유서원을 공격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말에 장문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느냐? 망자대제가 돌아버리지 않은 이상 그럴 리가 있겠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네 놈이야말로 만유서원의 경계대상 일호가 아니겠느냐!” “…….”
“이쯤 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수라지옥의 일은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 더 이상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썩…….” “도와주면 만유서옥을 열어주겠다!” 순간 장문수가 말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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